복현유사 2020

네 번째 이야기 하룻밤의 꿈

구술자 채인수 / 청년 편찬자 장준원

복현유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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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는 명산이 다섯이나 있는데 그 중 가장 수려한 자태로 으뜸이라 꼽히는 것은 팔공산이니, 남쪽으로는 큰 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수많은 왜적의 침입을 막아주며 서쪽으로는 마치 조상을 모시고 서 있는 자손들처럼 일흔 두 개의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북쪽으로는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어 사람들은 천지신의 가호를 받는 곳이라 부르며 칭송하였다. 이들은 모두가 수려하고 웅장하여 누구든지 그 광경을 한번 보면 언제까지나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봉우리들이 얼마나 높은지 그 모습이 구름에 가려 

있고, 봉우리마다 중턱에는 항상 안개가 자욱해서 맑은 날씨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그 참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팔공산의 수려함을 익히 듣고 이 땅을 찾아온 가람이라는 학자는 산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홀로 정상에 서니 밤공기가 차가운데 장미 가지 끝에는 둥그렇게 달이 떴다.살랑살랑 봄바람을 맞으니 온 마을에 맑은 향기가 절로 가득하다.이 한 수의 시를 읽어보면 태산의 웅장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팔공산의 빼어남과 신천의 웅대함은 남녘에서 으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장미향이 가득하고 팔공산이 둘러싸고 있는 복현마을에 마음이 끌린 가람은 이내 ‘복현암’이 있는 복현동의 터 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 영남 지방의 많은 사람들은 복현마을의 가람에게 지식을 얻고 싶어 했고 제자로 들어가길 청하였다. 복현마을 사람들은 모두 가람의 지식에 감탄했고 그의 지식은 멀리 퍼져‘배자못’의 용왕에게까지 들리게 되었다. 용왕은 가람의 지식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마을 주민들의 얘기를 들었다. 하루는 대사가 모든 제자 앞에서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있는데, 배자못의 용왕이 백발 노인으로 변신을 하고 그 자리에 이르러 강론을 듣고 돌아간 일이 있었다. 가람의 학식에 감탄한 용왕은 이내 자신의 꼬마 도깨비를 시켜 가람을 자신이 아끼는 ‘장미공원’ 잔치에 초대한다. 이에 대사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일렀다“내가 너무 나이 많고 거동이 불편하여 외출하지 아니한 지가 어언 십여 년이나 지났느니라. 헌데 동정호 용왕께서 이곳까지 설법을 들으러 오셨은즉 너희들 가운데 누가 나를 대신하여 장미공원에 다녀와 사례하고 오겠느냐?”그러자 나린이 “스승님, 소자가 비록 불민하오나 용궁에 다녀오겠나이다.”“그래 주겠느냐?” 대사가 크게 기뻐하며 나린에게 다녀오라고 본부했다. 나린의 나이 이십에 삼장경문을 다 익혔으니 그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은 모든 제자들 중에서 으뜸이었다. 가람은 나린의 지혜를 지극히 사랑하여 마침내 나린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자기의 대를 잇도록 하기에 이르렀다.

 

가람의 도량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나린은 용왕의 잔치에 가게 된다. 용왕의 후대로 술에 취해 돌아오던 나린은 눈앞이 어른거리고 어지러워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나린은 잠시 맑은 물에 목욕하고자 배자못으로 내려가 낯을 씻는데 문득 향기로운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를 찔렀다. 나린은 마음이 호탕해져 혼자 중얼거렸다. “이 위에 어떤 꽃이 피어 있기에 이리 좋은 향기가 풍기는 것인가?” 나린은 의관을 정제한 후 꽃을 찾다가 ‘복현암’을 구경하고 돌아가던 선녀와 마주쳤다. 허겁지겁 돌아온 나린은 선녀의 고운 자태에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눈앞에 아른거려 유학 공부가 지루해지고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와 공명을 원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챈 스승에 의해 선녀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떨어져 미르라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미르가 떨어진 인간 세상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하루를 지내고, 세상의 화목으로 땔 수 있는 풀뿌리는 모두 아궁이에 때던 시절이었다. 주변의 모든산들은 모두 민둥산이었고 사람들은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미르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강인한 아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을 조실부모하지만 이내 자신을 그 누구보다 아껴주는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집안도 유복해 어릴 적부터 세발자전거를 타고 금단추 도금한 양복을 입었으며 깔끔한 고무신을 신는 유복한 아이였다.

 

4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5시에 울리는 소방서 사이렌이 12번 울리며 대포소리와 함께 인민군이 들어왔다. 6.25사변이 터지고 열심히 공부하던 학교가 기약 없는 휴교를 진행했다. 미르의 가족은 아양교를 지나 강의 제방 밑으로 직선도로를 따라 피란길에 오르게 된다. 전쟁이 진행되고 파괴된 인민군 탱크를 학교 구석에 가져다놓고 놀이터처럼 구경도 했고, 아이들을 위해 마술사가 와서 눈앞의 물건이 사라지는 마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후 미르는 반야월에 있는 고래등 같이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정착하게 됐다. 집 안에 창고, 가게도 있었다. 유학자시자 한학자시던 아이의 아버지는 동촌 지역 면장을 지내시고 옛날 상주, 질량, 반야월, 경산 인근의 유력 인사였고 미르의 집 땅을 밟지 않으면 고속도로도 못 지나간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큰 행복으로 여겼다. 불교의 ‘회심록’이라는 경에 있는 급수공덕 즉, 남에게 물 한잔이라도 공급하는 공덕을 중시했다. 전쟁 중 피로에 지친 군인들을 돕기 위해 비가 오고 있는 날 물 펌프로 물을 대접하고 집안의 전기로 장병들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목욕탕에 있는 주물로 된 욕조에 물을 데워 전쟁 중 피로한 장병들의 피로를 풀어줬다. 많은 병사들과 장군, 경찰서장, 인근 기관장들이 모두 미르의 부모님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5

그 후 미르는 복현동에서 서른마지기 정도의 포도농원을 짓게 된다. 농원에는 종달새의 노지리터처럼 산들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고 큰 우물이 있었다. 복현 인근에는 상수도가 전혀 없어 농원의 우물에 복현 주민들이 한 집도 빠짐없이 물을 길러 왔다.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물지게를 지고 물을 퍼는 중에 따리박 끈을 놓쳐 어린나이에 6~7m의 우물에 빠졌다. 미르의 부모님이 잠시 농기구를 보고 온 사이 물 푸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에 헐레벌떡 우물 내부를 들여다보니 여자아이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다행히 미르의 부모님이 금방 발견해 일꾼을 시켜 사다리를 놓아주었고 머리에 피도 나지 않고 무사했다. 여자아이를 구해준 일이 인연이 되어 2년 후 미르는 여자아이의 누이와 혼인을 하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처제가 샘에 떨어지는 우연한 계기가 되어 혼인이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지만 미르의 부모님은 하늘이 맺어준 천정가연이라고 생각하고 새아기를 친자식처럼 아꼈다. 혼인이 이루어지고 미르는 1남 4녀의 자녀를 생산하고 자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효도를 다하고 있다. 그 후 미르는 벽돌공장 사업, 소나무 벌채, 묘목 사업 등 하는 사업마다 성공하게 되었고 복덩이같은 자식, 남부럽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집, 부, 명예를 얻어 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이 풍요로운 삶에 점점 싫증이 나고 죽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생각이 겹쳐 미르는 영생을 위해 신선이나 그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부와 명예 등 세속의 것을 놔두고 떠날 마음가짐을 하게 된다. 

 

6

미르는 “내가 살아온 인생행로가 험산처럼 시련과 파고를 많이 겪은 것 같다”며 “처음 태어날 때부터 많은 인연과 삶을 만들어준 복현동에서 지금처럼 안빈낙도의 삶을 살 것이다” 고 말했다. 불의를 분명히 하며 의협심이 강했고 또한, 남하고 쉽게 융화될 수는 없지만 한번 사귀면 평생을 우정을 가지고 있었던 미르는 복현동의 만호정 앞에 앉아 사색, 명상, 해오를 하기로 한다.그러던 와중 과거 자신을 알고 지냈다는 중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중은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는데, 미르와 화담을 나누며 

미르에게 춘몽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미르가 이를 묻자, 환술을 부려 미르의 눈앞을 흐리게 하는가 하더니, 미르는 나린의 모습으로 깨어난다.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 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린은 자신이 경험한 일들이 모두 꿈이라는 것을 알고, 대사에게 속세에서의 부귀가 모두 허사인 줄을 알게 해준 것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한다. “네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으니 내가 무슨 관여한 일이 있겠느냐? 또한 네가 인간 세상의 윤회하는 일을 꿈으로 꾸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네가 꿈과 인간 세상을 나누어서 둘로 보는 것이다. 너의 꿈은 오히려 아직 깨지 않았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나비가 또 변하여 장주가 되었다고 하니,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하는 것은 끝내 구별할 수 없었다. 누가 어떤 일이 꿈이고 어떤 일이 진짜인 줄 알겠느냐. 지금 네가 미르를 네 몸으로 생각하고, 꿈을 네 몸이 꾼 꿈으로 생각하니 너도 또한 몸과 꿈을 하나로 생각지 않는구나. 미르과 나린 중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니냐?”

 

ㅣ 장준원 편찬자의 추신ㅣ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느낍니다. 교육 문제나 직장 문제, 인터넷의 발달로 한 사람이 속하는 지역사회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지만 지역사회에 대한 소속감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라져 가는 마을들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도시재생 사업이 늘고 있습니다. 기존 도시의 문화, 경제, 도시재생 사업은 이전 주민들의 주거지로서의 역할을 파괴하지 않고 도시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도시 기능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복현 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이야기를 만들고, 노후화된 근대 역사 건조물 재활용 방안 강구, 지역주민 자립 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재생된 지역 문화 공간을 활용하여 지역민의 애향심과 자긍심을 함양하며, 미래 후손을 위한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도시로의 발전을 목적으로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철거에 의한 기존의 재개발 방식이 아닌 현재 동네의 원형을 유지하고, 취약한 주거 환경은 물론 교육, 문화, 복지 환경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 사업입니다. 낙후 지역의 주택 개량 등 물리적 환경 개선과 더불어 일자리 제공, 범죄 예방, 안전, 교육, 보건 등 통합적인 대안을 모색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일률적인 전면 철거 방식을 벗어나 지역 단위 공동체를 형성하여 지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 중심의 도시 재생 사업입니다. 채인수 어르신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들이 많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삶이 곧 역사이며 그것이 담긴 장소를 무작정 재개발 하는 것이 아닌 청년들과 함께 기록하고 남기는 작업이 있어 재개발 작업이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