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현유사 2020

두 번째 이야기 복현동을 바라보다 닮아진 소나무

구술자 강순덕 / 청년 편찬자 박예찬

복현유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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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어색하고 쑥스럽네요. 저는 복현동 한 귀퉁이에 뿌리내리고 있는 소나무랍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어왔어요. 나이를 세는 일도 옛날 옛적에 포기했죠. 그렇게 마을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어느 계절에도 푸르른 잎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지켜봤어요. 오늘은 제가 본 마을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잠시 들려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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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복현동은 조용할 틈이 없는 곳이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골목골목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모습은 마을에 늘 활기를 줬죠. 재잘재잘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려요. 저는 늘 아이들의 놀이터였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딱지치기 등 아이들과 함께 놀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숨바꼭질이었습니다. 술래가 저에게 기대어 눈을 숨긴 채 숫자를 세면 다른 아이들은 허겁지겁 숨을 곳을 찾아 뛰어갔어요. 높은 곳에서 마을을 보며 아이들이 어디 숨었는지 찾는 건 정말이지 재미있는 일이었죠. 다들 얼마나 잘 숨는지 혹시 다른 아이들이 잊어버리고 돌아가진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했죠.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집니다. 그때가 되면 집집마다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 다들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가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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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동에는 다양한 마을 행사가 많은 동네이기도 해요. 초등학교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온 마을이 떠들썩했죠. 마을 운동회나 다름없을 정도 아니겠어요. 아이들보다 부모님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더 열심히 했더랬죠. 아 그리고 초등학교 하니 마을 바자회를 운동장에서 했던 기억도 나네요. 새 물건을 사기 어려운 형편에 싼 가격으로 서로의 것을 나누는 풍경은 정겨웠어요. 저는 바자회 하면 김씨 아저씨네 막내 철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답니다. 철이의 소원은 로봇 장난감을 가지는 것이었어요. 늘 학교 친구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죠.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내색하거나 떼쓰지 않는 속 깊은 아이였었죠. 그런데 그날 바자회에 철이가 원했던 로봇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니겠어요? 로봇을 품에 안으며 지었던 철이의 표정을 여러분이 봤어야 

했는데, 세상 어느 부자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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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참 많은 활동이 있었답니다. 양로원과 복지센터 봉사는 물론이고, 가을이 되면 은행을 주운 돈으로 기부활동도 했었죠. 일일 다방이라고 해서 부스에서 커피와 차를 팔기도 했고요. 이런 행사들에 마을을 위해 늘 앞장서서 뛰어다니는 분들이 많았답니다. 복현동 주민들은 참 활동적인 사람들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건 저만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여러분에게만 알려드릴게요. 그때는 몹시 추운 겨울이었어요. 게다가 그날은 눈도 너무 많이 와서 앞이 안 보일 정도였죠.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는 깜깜한 밤이었어요. 모두가 잠들어 있는 고요한 밤이었어요. 저는 가지에 쌓인 눈들을 털어내느라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자세히 들어보니 누군가 앓는 소리였어요. “콜록콜록”하는 기침 소리와 “끄응”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고개를 들어서 마을을 살펴보니 윤씨 할머니 집에서 나는 소리였어요. 며칠 동안 몸이 으슬으슬 하다고 하시더니 감기에 걸리신 것 같았어요. 저는 불안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를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러던 중 어디선가 또 다른 소리가 들렸어요. 사박사박 거리는 빠른 발걸음 소리였는데 그 소리는 윤씨 할머니 집 앞에서 멈췄어요. 그 발자국의 주인공은 바로 마을 교회의 목사님이셨어요. 어떻게 아셨는지 약봉지를 손에 든 채로 대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어요. 눈을 흠뻑 맞은 채로 말이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그 안에 있던 목사님의 뒷모습은 잊히지 않는 장면이에요. 그러다 저는 까무룩 잠이 들었지 뭐예요. 계속 아프시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아침이 돼서 보니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을을 누비고 계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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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지 않나요?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큰 슬픔을 당해서 힘든 나날들을 보낸 이들도 있었고, 서로 얼굴 붉히고 싸우는 나날들도 있었죠. 그러나 복현동 주민들은 모든 것들을 이겨낸 사람들이랍니다. 늘상 먹을 것을 서로 나누고, 힘들수록 서로 도왔어요. 갈등이 있을 때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가며 더 나은 방향을 늘 찾아냈죠. 이제는 골목을 누비던 아이들도 떠나고, 푸르렀던 마을의 세월도 많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마을이 좋답니다. 긴 시간을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지 않나요? 마치 우리 나무들처럼 말이죠. 저는 복현동이 소나무를 닮았다고 생각하곤 해요. 비가 쏟아지든, 눈이 내리든, 태양이 바싹 내리쬐든, 언제나 푸른 잎을 솟아내는 한결같은 소나무 말이죠. 그래서인지 저는 복현동이 좋답니다. 재밌게 들으셨나요? 오늘 저의 이야기는 이만 마치려 해요.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한보따리나 남아 있지만 훗날을 기약해 보아요. 저는 그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늘 바라보고 있을게요.

 

ㅣ 박예찬 편찬자의 추신ㅣ

추억팔이가 단순히 과거에 취해 즐기는 한순간의 유흥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특히 복현동 주민분들처럼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나눠 온 곳이라면 말이죠. 인터뷰를 하고 글을 구상하면서 그런 기억들을 곱게 담아내고 싶었지만,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저와 다른 편찬자들의 글이 작은 물결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그리고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강순덕 어르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흔히 어르신 세대는 ‘과거’, ‘지난 시절’과 같은 단어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고민하며 미래를 꿈꾸는 어르신의 모습을 통해 저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하며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글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이야기가 어르신과 복현동의 자그마한 부분을 그려본 거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