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현유사 2019

복현1동 어르신들의 언어가 곧 ‘시詩’였다

어르신들의 기억을 더듬어

복현유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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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말고 “구름살”이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 2019년 10월 22일 화요일 오후 4시 다소 어색한 분위기에서 복현1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강의실에서 ‘시’ 시간이 열렸습니다.복현1동 어르신들의 기록을 담아, 설화 형태로 각색한 <복현유사>가 곧 최종 인쇄를 앞두고 있고 그것을 공유하는 자리가 11월 초에 열리기로 예정되었습니다. 극단에서 활동하는 두 분이 희곡으로 각색한 복현유사의 2편을 낭독하고, 다른 세 편과 관련하여 어르신들이 본인의 삶과 삶의 무대인 복현동을 소재로 한 시를 낭송해보는 기획을 준비하고자 시 수업을 오늘과 다음 주 화요일 오후 두 시간씩 계획하여, 첫 시간 진행했습니다.어르신들과의 수업에 상당히 진땀을 뺐습니다. 전공이 국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학습대상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탓일까요? 진행에 진땀 뺀건 자업자득이었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학교 다닌 이 후 처음으로 시를 접하는 것이었고 수십년만에 바라보는 시들에 어쩔줄 몰라하셨습니다. 오히려 어르신들께서 내 수업 형태나 방식에 맞춰주셨습니다. 평균연령 70대이신 복현1동 어르신들에게 사랑 / 봄 / 길을 주제로 한 3편의 시를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표현에 진땀도 잠시 제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셨습니다.‘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80대 어르신께서는“전봇대에 땅~하고 머리를 부딪친 느낌” 이라 하셨는데, 사실 이 말씀은 제가 해달라고 요청드린 과제가 어려워서 막막하다는 표현이셨습니다.그러면서도 술술 이야기 하신 건 의사선생님과의 대화였습니다. 본인께서 치매로 걱정하시니 의사 선생님께서는,“할머니 저한테 이렇게 찾아오시고, 저랑 이렇게 이야기하시고 할 수 있으면 치매 아니에요”“지금 이 순간 행복하시면 되요” 라고 하셨단다. 의사선생님이 어떤 뉘앙스로 말씀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건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이야기해주신 듯 합니다. 이옥기 어르신께서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자기가 쓴 시를 읽어보겠다 하시더니,부인 이름을 부르시며, “45년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 이제 말하겠다. 사랑한다. 됐나?” 라고 하는 자작시를 즉석에서 낭송하셨는데 상남자의 아우라가 느껴지면서도 뭐랄까 풋풋함… 이 느껴졌습니다.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을 낭송하는 할머니께서는,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이라는 구절에서 ‘주름살’을 ‘구름살’로 읽으셨습니다.글자를 크게 뽑았지만, 그럼에도 시력이 좋지 않으셔서 구름살이라고 읽으셨을 것이나 일부러 ‘구름살’로 읽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부드럽게 품는 느낌의 구름살 가득한 삶.우리는 이 분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모양의 구름살이 맺혀있을까요?복현1동 주민분들의 언어가 곧 시가 되는 것을 경험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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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이가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

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오후 4시 복현1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서 두 번째 시 수업을 진행하고 마쳤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첫 시간에 살린 문학 감수성을 살리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복현유사 속 이야기소재들을 시상으로 끌어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다른 어르신들께서는 청년편찬자들이 지은 복현유사를 또 읽어드려도 재밌어하시고 한층 자연스럽게 따라오시는데, 지난 복현유사 공유회 때도 심드렁해 계신 한 할머니께서 여전히 심드렁해 계셨습니다. 그런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시면서도 복현유사는 이야기는 정말 잘만들었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하셨습니다.복현유사의 이야기를 통해 시상을 추출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제비이야기>의 제비와 좋은 소식, 행운에 관한 이야기, <가람전>의 강과 세월, 물과 관련된 생활에대한 이야기, <복현암이 남긴 선물>의 “소원”과 “시간여행”을 소재가 한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원을 여쭈다가 이 심드렁한 할머니로부터 물 다라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할머니 입장에서는 도시재생인지 개발인지 빨리 해서 낡은 집을 좀 빨리 수리해서 편안하게 살고 싶은데, 도시재생센터에서 모아놓고 한다는 일이 뻔히 아는 옛날 일들 가지고 이야기만들고 시 짓는다 하니 심드렁하실 수 밖에 없으셨겠죠. 주민분들이 눈치 주셨는지 아님 본인이 역정이 나셨는지, 일이 있으신지 조금 일찍나가셨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할머니의 말씀과 태도에서 뜨거운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어르신의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웃 할머니의 심드렁한 태도와 울화 섞인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불편한 민원 혹은 듣기 거북한 투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불편한 삶에 대한 투정과 불만이 마음을 울리는 한편의 시로 전해진다면 “시”는 단순히 감정의 장치가 아닌 이성의 장치로도 기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서로를 남이 아닌 “이웃”으로 만드는 관계의 기능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해요.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말과 동시에 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한 수업이었습니다. 낭송시간이 기대됩니다. 그 어르신의 입장에서 제가 써 본 습작시를 남깁니다.

 

 

<다라이 세 개>

우리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젊은 청년이 동네사람들 모아놓고 물었다

소원이 무엇이냐고, 

들어줄 것도 아니면서, 답답해가 말했다

 

비가 내리면 집에 물이 샌다.

집이 물바다가 안될라고

 

다라이 한 개 갖다놓고 뚝뚝

다라이 두 개 놓고 뚝뚝

다라이 세 개 놓고 뚝뚝

 

물은 계속 새는데

집 고쳐준다는 말도 샌다

 

물 다라이 수는

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야속한 내 나이랑 함께 는다

 

내 살아 있는 동안

물다라이에 물 받을 일 없는

집에 사는 게 소원이다

그게 다다

이 말하고 나왔다

 

 

3

두 번의 시 워크숍 시간, 주민분들 대부분 시를 읽은지 수십년이 지나서 익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시적 감수성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복현1동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감성을 마음껏 표현해주신 모범생 강순덕 주민협의체 대표님의 

습작 시를 소개합니다. 강순덕 회장님의 습작 시를 바탕으로 최종공유회에 발표할 시 

세 편이 만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