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현유사 2019

배자못과 행복현동 – 윤석환

복현1동이 행복한 이유

복현유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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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에 ‘옥’이라는 자가 살았다. 옥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총명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의 힘은 장사 같아서 지게를 두 개씩 지고 다녔으며 목소리는 힘있고 우렁찼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시골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장군이 될 운명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옥은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의 자랑이었다. 효성이 깊은 그는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옥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옥의 어머니는, 하루는 옥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너의 기운이 내 옆에서 농사만 짓기에는 너무 아깝구나. 조만간 너의 동생이 돌아올 것이다. 농사일에 장정이 두 명씩이나 필요하지는 않으니 나는 네가 내 곁을 떠나 도시로 갔으면 좋겠다. 저 산 너머에 복현이라는 동네가 있다고 하더구나. 그곳에 너희 누이가 이미 있으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그 곳으로 가서 큰 세상을 보거라. 분명 이 곳보다는 나을게다.”옥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고민했다. 평생 한 곳에서만 살아온 그가 낯선 곳으로 어머니를 두고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서는 사내로서의 야심도 치솟았다. 그래서 그는 답을 구하기 위해 동네에서 가장 현명한 윤 노인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윤 노인은 잠시 눈을 감더니 곧 입을 열었다.“자네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네”윤 노인은 한 상자를 가져오더니 그 속에 있던 신발을 내밀었다.“이 신발은 자네의 힘이 되줄걸세. 이 신발을 신으면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고, 그 어떤 물건도 쉽게 들 수 있을 걸세”동네에서 가장 현명한 윤 노인의 말을 들은 옥은 자신감에 가득 찼다. 그래서 옥은 복현으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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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옥은 산을 몇 개나 넘었는지도 모른 채 밤낮을 걸었다. 너무 오래 걸어 눈에 보이는 풍경이 지루해질 때 쯤 고즈넉한 산 사이에 숨은 마을을 발견했다. 그 곳은 ‘복현’이었다. 복현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큰 연못이 있었고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뛰어 놀았다. 동네의 어귀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골목마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다. 날이 어두워질 때 까지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가득하고, 중앙통이라고 불리는 큰 길에는 물지게를 잠시 내려둔 사내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막걸리를 들이켰다.누이의 집에 자리를 잡은 옥은 채소장사를 시작했다. 고향에서 농사일을 했던 옥은 채소에 대해 잘 알았다. 또한 총명하고 계산이 빨랐다. 과수원과 밭이 있던 동촌부터 시장이 있던 칠성까지는 족히 10리를 훨씬 넘는 거리였으나 그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 그는 윤 노인의 신발덕분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이런 신기한 능력 덕분에 그는 아침부터 낮까지는 채소장사를 하고 밤에는 목재를 날랐다. 동네사람들은 그가 범상치 않다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중앙통에 모여 채소를 다듬던 아낙들은 옥에게 연정의 눈빛을 보냈다. 부지런한 그는 착실히 돈을 모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현의 초가집들은 슬레이트집으로 바뀌어 갔고 그는 어느새 누이의 집에서 독립해 스스로 터전을 잡고 살만큼 안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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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과 그의 신발의 소문은 멀리멀리 퍼졌다. 복현의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던 ‘불행’이라는 자의 귀에도 이 소문이 들어갔다. 소문을 들은 불행은 옥의 신발이 탐이 났다. 그 신발을 갖고 있다면 불행도 지치지 않고 여러 사람 사이들을 옮겨다니면서 불행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불행은 신발을 빼앗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냈다.인간에게 줄 수 있는 불행 중 하나인 ‘질병’을 갖고 옥의 집에 찾아갔다. 그리고는 질병을 옥의 집에 풀었다. 옥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질병에 걸려 앓아 누웠다.앓아 누워있던 옥을 찾아가 불행은 이렇게 말했다.“자네의 병은 불치병이네, 100리 밖에 용한 도사가 자네의 병을 고칠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는데 자네의 신발을 빌려주면 내가 금방 뛰어갔다가 오겠네.”불행의 말을 들은 총명한 옥은 그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신발을 빌려주지 않으면 불행이 

또 어떤 불행을 가져올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옥은 불행을 물리칠 방법을 생각해 냈다.불행이 길을 떠나기 하루 전, 옥은 불행에게 말했다.“사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신발의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이 신발을 신으면 물도 건널 수 있다는 것이네. 지치지 않고 산과 물을 건너 꼭 도사를 만나고 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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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들은 불행은 신이 났다. 그래서 길을 서둘러 떠났다.복현의 산을 몇 개 넘으며 그는 진짜 지치지 않는 것에 신기해 했다. 그리고는 빨리 물을 건너보고 싶었다. 그래서 불행은 복현의 입구에 있던 아름다운 못으로 갔다. 못은 깊지 않았지만 충분히 넓어서, 건너보기에는 충분할거 같았다. 불행은 물로 걸어갔다.그러나 옥의 꾀에 속은 불행은 물에 발을 내딛자 마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지치지 않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못에 빠져 죽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는 ‘불행이 옥에게 패배한 못’이라는 뜻에서 이 못을 패자못이라고 불렀다. 패자못은 시간이 지나면서 ‘배자못’이 됐다. 배자못은 땅을 비옥하게 하여 복현사람들을 배불리 먹였고, 복현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을 찾고 싶을 때 찾는 장소가 됐으며 복현사람들은 배자못을 통해 행복을 느꼈다.옥은 신발을 잃었지만 신발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런 특별한 능력이 없이도 불행이 없어진 복현동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이 사라진 복현 사람들은 행복해졌다. 그리고 옥을 영웅으로 받들었다. 동네의 영웅이자 불행이 없는 사나이인 옥은,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와 복현에서 평생 불행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ㅣ 편찬자 윤석환이 남기는 말 ㅣ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하며 복현동의 옛날얘기들을 듣는 것은 저에게도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현재 복현동에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서, 어르신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동반자로서 내가 살고 있으면서도 몰랐던 이 마을의 이야기를 적는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재밌었습니다.이야기를 적으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인터뷰한 내용 중에 어떤 내용을 넣어볼지, 줄거리는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복현동은 어떻게 녹여낼지. 시간이 빌 때면 복현동 곳곳을 걸어 다니며 생각해봤습니다. 머릿속의 도끼질을 거듭한 끝에 어르신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어낸 졸작을 올립니다.대학생과 주민간의 거리를 줄이는데 제가 했던 활동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처럼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쭉 생겨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더불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옥기, 최문헌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