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현유사 2019

어르신들이 기억하고, 젊은이들이 기록하다

복현유사가 만들어지기까지

복현유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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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유사 편찬자들을 모집하는 글 

2019년 6월 25일 오후 10시 복현1동을 함께 기억하고 기록할 사람을 찾습니다. 복현유사는 사라지는 것을 영원하게 만드는 기록이고, 저물어가는 것을 반짝거리게 하는 기록입니다. 멀게는 2000년 전, 1000년전 한반도 곳곳의 카더라들을 800년 전 로컬에디터 일연 스님에 의해 “삼국유사”로 엮어졌습니다. 삼국유사 속 이야기들은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연극이 되고, 춤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추억과 기억은 우리 머리속에서 입과 입을 통해서 잊혀질뻔 하지만 “기록”에 의해 기억되고 그리고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장르들로 재탄생하여 새롭게 기억됩니다. 지금의 복현1동은 사라집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잃고, 비교적 살기 좋은 개선된 환경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금 살고 계신 분들의 기억들, 추억들도 함께 잊혀질 수 있습니다. 복현1동은 경북대학교의 대학생 원룸촌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혹은 재난(신천 홍수)으로 인한 피란민촌으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인재든 자연재해든 재난을 피해 어렵게 삶을 꾸려나가신 분들의 이야기 속에 앞으로 많은 재난을 극복해야할 우리들이 배울 것들, 느낄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복현1동의 이야기와 지금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 공간과 기억은 영영 사라진 겁니다. 천년이 지나 미래인들이 읽고 복현1동을 떠올릴 수 있는 특별한 책. 천년 이후에도 복현1동의 모습과 주민분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문자로만 담아내는 것 뿐만아니라, 다양한 장르로서의 이야기가 쉽고 재밌게 소화될 수 있는 바탕이 될 “기록”을 하고 싶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볼 “복현유사”의 편찬자가 되어주실 대학생/청년 5명을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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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자들과 주민들의 첫 만남 

2019년 8월 14일 오후 2시 뜨거운 여름, 복현1동 현장지원센터에서 앞으로 약 3달 동안 진행되는 복현유사 프로젝트 진행자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복현1동은 경북대학교 근처에 있는데 청년들이 사는 주거지역과 기존 주민들이 사는 주거지역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낙후된 동네에 고령의 어르신들이 사시는데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기존 마을의 모습은 잃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복현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지원센터 김은윤 센터장님의 복현1동과 도시재생사업에 관한 소개를 해주셨고, 내마음은콩밭 서민정 대표님의 생활문화공동체 사업 소개에 이어 제가 복현유사의 활동방향과 내용 및 어르신들과 4시에 합류하여 함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우선 청년 참가자 5명을 모집하여 카카오톡 단톡방을 개설한 뒤 “편찬자들”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인해 곧 사라질 지금의 복현1동의 모습과 어르신들의 기억들을 기록하는 뜻깊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복현유사는 복현동과 삼국유사의 합성어입니다. 단순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기승전결과 교훈을 갖춘 설화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습니다. 함께해주신 어르신들은 오늘 더운 날씨에도 함께해주시고, 진행자의 안내도 잘 따라주시고, 함께하는 청년 편찬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복현유사 사업 소개를 해드렸는데 기똥차게 이해해주시고 카더라부터 전설적인 이야기들, 소위 “야사”라 부르는 것들까지도 이야기해주시는 듯 했습니다. 한 청년 참가자는 복현1동에서 리어카 마늘 장사를 시작해, 배추 농사도 짓고 70이 넘으시고도 일하시는 어르신께 불편한 점, 힘드신 점 없으셨냐고 여쭈니까 하나도 없고 다 좋았다는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거는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것” 이라며 기록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상호존중이 가능해지는 이 느낌이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활동한 들안길과 두류동에서도 느낀 감정이 다시금 느껴져 좋았습니다. 부끄러워하시다가도 이내 청년들에게 많은 이야기해준 참가자분들중에 80이 넘으신 한 할머니께서, 다른 분들이 이야기 해준 내용 중에 웃긴 것이 있었는지 입을 막고 “푸훗”하는 느낌으로 웃으시는게 정말 귀여우셨습니다. 문득 가장 오랜 시간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외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복현1동 어르신들이 겪은 고난과 즐거움, 마을과 생활문화의 변화를 잘 담아낸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기대됩니다. 처음이었음에도 어르신들도 청년 편찬자들도 정말 잘 따라주셔서 다행多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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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더 가까워진 편찬자들과 주민들의 두 번째 만남 

2019년 8월 28일 오후 4시복현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지원센터에서 두 번째 복현유사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다섯명의 청년 편찬자님들의 애살과 노력으로 첫 시간 인터뷰, 개별 추가 인터뷰를 통해 복현1동 어르신들의 삶과 동네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주 전, 첫 만남 때는 어르신들이 뭔지도 모르고 센터에서 불려 오신 듯한 느낌으로 사실 어안이 벙벙하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들으시더니 엄청 적극적으로 피드백해주시면서, 앞다투어 이것저것 말씀하셨습니다.본인 이야기가 나오면 쑥쓰러워하시면서 웃음지어 보이시고 손자보다 어린 청년들의 입에서 나오는 어르신들의 삶과 복현동의 이야기들에 당시는 괴로우셨더라도 지금은 즐겁게 떠올리시는 것 같았습니다.마르지 않던 깨끗한 샘 : 들샘, 새벽부터 물지게를 이고 물을 떠오신 시간, 재래식 공용화장실, 아이들 숙제노트로 쓴 화장지, 얼마전까지 있었던 진주상회의 외상노트, 사지도 않은 품목이 외상장부에 적혀있어 점빵에서 싸운 이야기들, 동촌 금호강까지 가서 빨래하던 나날들, 지금은 없어진 배자못과 반딧불이들과 물귀신, 리어카로 칠성시장에서 산 양파를 다른 시장으로 옮겨 팔던 이야기……. 다양한 시간이 중첩된 마을 지도를 그려보며 오늘 시간을 마무리하며 3주의 시간동안 복현1동을 사람과 공간과 이야기의 형태로 만나보았습니다. 앞으로 한 달간은 청년 편찬자들과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추가답사 및 인터뷰 그리고 본격적으로 복현유사를 편집, 각색할 시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고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가치를 느끼신 청년 편찬자들과, 본인들의 고달픈 삶이지만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으로 기꺼이 들려주신 어르신들 덕분에 힐링하는 기분입니다. 좋은 이야기가 되도록, 좋은 책이 만들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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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마을의 잔주름을 사랑하는 시간 

2019년 9월 8일 저녁 7시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지금 계신 분들과 동네의 모습이 곧 사라질 <복현1동>.삶이 편안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잊으면 안될 우리 삶의 다양한 모양들을 기록하고자 일연스님을 흉내내면서 <복현유사>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청년 편찬자들5명과 함께 한 추가 워크숍에서는, 함께하는 분들의 따뜻한 감성과 톡톡 튀는 영감에 치유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거의 3시간 동안, 모임공간 <적당한데>에서 진행된 복현유사 편찬 워크숍은 이 순서로 진행했습니다.- 첫째, 복현유사 편찬 방향 및 구성에 관해서, 주민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이야기들을 각색하여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전설, 동화 형식으로 만들어보기 - 둘째, 복현1동의 주민분들과 만나고 현장을 다녀본 뒤 느낀 점을 살려 복현1동을 의인화 해서 그려보기 - 셋째, 자신의 이야기에 들어갈 삽화를 그려보기편찬자들 각자가 만난 주민분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 삶의 배경인 복현1동이라는 공간과 기억들 중에서 수십년전의 복현1동의 모습들과 그 때의 기분들, 그리움의 대상들을 어떤 모습으로 구현할지 고민했습니다. 편찬자분들과 이야기하면서, 툭툭 튀어나오는 아이디어에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이야기에 벌써 재미있겠다 싶은 기대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시간에는 복현1동이라는 마을을 의인화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편찬자들 각자의 이야기에 삽입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모두 ‘노인’과 ‘오래된 길’이 나왔습니다. 결국 사람도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듯이 마을도 나이가 들면 잔 길이 생깁니다. 그 길을 깔끔하게 없애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마을의 오래된 주름길들 더불어 주민들의 주름살들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는 것을 공감했습니다. 달서구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두류동 문화콘텐츠 사업 할 때, 주민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할 때 느낀 감정을, 복현유사 편찬자들 중 한 참가자가 아주 똑같이 느낀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활동가, 기획자로서 제가 느낀 뿌듯함 혹은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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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6일 목요일 오후 7시 

복현유사 프로젝트 9월 결과공유회 를 마치고. 복현1동 어르신들께 소중한 선물을 선사한 복현유사 편찬자들.9월 마지막 목요일 오후 5시, 복현유사 편찬자분들이 어르신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재로 상상도 가미하여 만든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복현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지원센터에서 가졌습니다. 9월의 결과공유회라 한 이유는 아직 “복현유사”라는 책이 완성되지 않았고 이 책과 연계하여 벌어질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어르신들의 삶 자체, 그리고 그 삶의 배경이 된 복현1동을 소재로 편찬자 5명의 풍부한 상상력과 디테일한 구상으로 5편의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첫 번째 순서로 발표한 예지님은 “복현암이 남긴 선물”이라해서 복현동의 어원에 관한 설 중 하나인 복현암과, 인터뷰한 할머니의 스토리를 담아 시간여행을 한 남자의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어린 시절 복현동에 대한 그리움이 자연스레 묻어있어 참 편안하고 신비하게 느껴졌습니다.두 번째 순서로 규훈님은 “가람전”이라해서 ‘복현1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한 명의 사람이라면 어떨까?’ 라는 상상에서 강처럼 구불구불 난관도 거치고 끝내 바다와 합쳐지지만 그 명맥은 사라지지 않는 성실하고 꾸준한 가람이라는 인물로 형상화 했습니다.세 번째는 오늘 부득이 참석은 못했지만 자막과 녹음을 통해 이야기를 공유한 석환님의 “배자못과 행복현동”은 신비한 신발을 얻은 사내 “옥”과 “불행”의 싸움과 예전에 복현동 부근에 있었다는 배자못의 유래를 연결지어 흥미로운 전설을 탄생시켰습니다.네 번째, 현진님은 이제 막 태어난 제비의 눈으로 보는 복현1동의 모습과 엄마, 할머니 제비로부터 들은 복현1동의 모습을 떠올리는 식으로 귀여운 동화처럼 전개하였습니다.마지막으로 민국님은 인터뷰 대상이 된 어르신의 일대기를 전설 속 도깨비와 연계하여 “사내와 복현도깨비”라는 동화를 만들었습니다. 어르신의 삶이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것이라 엄청 느낀 점이 많았던 민국씨라 그런지 평소보다 힘주어 구연하였습니다. 복현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지원센터에 모인 어르신들은 이야기 한편이 끝날 때마다 큰 박수를 쳐주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발표를 마친 뒤 함께 식사하고 다과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씨앗으로 또다른 줄기, 잎,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어르신들중 한분은 편찬자들에게,“우리 이야기가 마치 전설같기도 하고 동화같기도 하고 다 아는 이야기인데 뭔가 사라지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짠하고 슬프더라”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칭찬은 모두 소중하지만, 가장 와닿은 칭찬은“내가 손주가 된 것 같았다, 오늘 이야기 꿈에도 나올 것 같았다. 너무 좋았다!”라는 칭찬이었습니다.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기만 했지, 새까맣게 어린 청년들에게 이런 재밌는 옛날 이야기 더군다나 복현1동 동네의 이야기를 들으시니 감회가 새로우셨나봅니다.저는 정말 한 게 없습니다. 운 좋게도 5명의 능력자 편찬자들이 이야기를 정말 정말 잘 써주셨습니다. 학업도 다른 일도 제쳐두고 집중해주신 탓일까, 정말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어르신들과 복현1동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고 그들의 상상력과 풍부한 감성이 더해져 아름다운 글들이 나왔습니다. 이야기의 가치는 정말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저물어 가는 것을 반짝거리게 하는 기록, 복현유사”가 어르신들에게 소중한 선물을 된 것 같아 정말 기쁘고 감사한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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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일, 오후 1시 

원고를 마무리하며 이제 곧 복현유사가 만들어집니다. 5명의 편찬자가 복현1동 주민분들과 만나 인터뷰하고, 직접 댁에 가기도하고 복현1동 여러 곳을 두루두루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그것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주민분들이 그리워 한 것들, 기억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양한 형태로 구현하였습니다. 제비의 다정한 눈으로 복현1동을 살펴보기도 하고 전설 속에 나오는 도깨비를 등장시켜 사내를 돕기도 하고 복현1동의 멈추지 않는 시간들을 강처럼 유유히 빗대어 보기도 하고 선녀가 남긴 보석으로 복현1동의 행복을 빌기도 하고 지금은 사라진 배자못에 ‘불행’을 빠뜨리고 행복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복현1동의 시간, 공간, 존재에 사랑을 담아 빚어낸 아름다운 글과 편찬자들이 직접 그린 삽화까지 더해 복현유사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이 정도면 일연 스님도 뿌듯해하시지 않을까요? 애정 가지고 어르신들과 만나고 인터뷰하고, 멋진 글 뽑아내 주신 편찬자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시고 소중한 이야기 펼쳐주신 주민분들, 워크숍 진행에 아낌없이 도와주신 복현1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현장지원센터 김은윤 센터장님 이하 직원분들,그리고 생활문화공동체 사업 함께 진행하여 복현유사가 잘 만들어지게 도와주신 내마음은콩밭 서민정 대표 및 직원분들 특히 궂은 일 도맡아 해준 이영지 매니저님, 복현유사를 더욱 값지게 해준 김채원 디자이너님께 감사하고 함께 해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복현유사를 통해 복현1동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영원히 간직하고 희미해져가는 것들을 더욱 반짝거리게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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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7일 목요일 오후 4시

복현유사 최종 공유회 & 세대공감 복식당 어르신들이 기억하고, 청년들이 기록한 복현유사를 마무리하며…한적한 목요일 오후 복현1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의 삭막한 강의실이 엄청 정감 있고 다채롭게 변해있었습니다. 복현유사는 예쁘고 따뜻한 책자로 나왔고 최종공유회에 찾아와주신 주민, 청년, 관계자 모두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학교 다닐 때 문법보다는 고전문학이나 현대문학시간이 좋았는데, 고전문학 시간에 들었던 “전기수”가 복현유사 프로젝트 기획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글소설이 막 성행하던 조선 후기에 일반 농민들은 일하느라 책을 읽기에는 어렵고 거리나 장터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들을 통해 문학을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심청전, 설인귀전 등 작품이 지닌 반전을 살려 흥미롭게 낭독해주었고 클라이막스에는 이야기를 끊어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유한 집에 낭독하러 가주기도 하고, 아마 이야기만 낭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대화상대가 되어주지 않았을까요?거리를 감성에 젖게 하는 버스커가 많은 요즘, 조선 후기 민중과 양반들을 사로잡은 이야기 버스커가 바로 전기수였습니다.복현1동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자원으로 바라보고 그 자원을 활용해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공동체간 결속을 강화하기 위함이라 이해하고 복현유사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특히 경북대 원룸촌의 대학생들과 신천홍수/한국전쟁 등으로 오신 피란민 어르신들간 접점도 필요했습니다.다섯 명의 편찬자분들은 칭찬을 백번천번해도 모자랄 정도로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만든 작품들을 다시 가공한 시 3편은 어르신들의 목소리로 되살아났습니다. 최종공유회는 어르신들의 시 낭송, 그리고 극단 두 팀의 복현유사 낭독극, 식사와 함께 주민과 청년간 이야기 나눠보는 복식당 순서로 전개되었습니다. 복현1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김은윤 센터장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이번 복현유사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한 누리라 프로젝트 심재신 대표의 복현유사 진행과정 소개 및 오늘 행사 순서 안내. 이어서 이순자 어르신의 시 낭송이 이어졌습니다. 이순자 어르신은 복현유사의 ‘제비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시 ‘제비가 오면’을 낭송해주셨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할꼬?’ 하면서 쑥쓰러워하셨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제비의 시선으로 복현동을 그리고, 예전 복현동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읽어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이옥기 어르신은 복현유사의 ‘가람전’을 토대로 만들어진 시 ‘가람이에게’를 담담하게 마음을 담아 잘 읽어주셨습니다. 힘겹게 살아온 복현1동 어르신들의 삶을 자전적으로 담은 ‘가람전’의 낭송을 들으시던 허영숙님께서는 옛날에 물동이를 이고 물 길으러 다니던 옛 생각에 잠겨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시 낭송으로는 마지막 순서로 남점화 어르신께서 ‘나의 소원’이라는 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이 시는 복현유사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복현암이 남긴 선물’의 핵심 소재가 된 ‘시간여행, 소원’ 등의 키워드에서 나온 주민분들의 진심어린 소리를 담아 만들어진 시입니다. 복현1동에 오래 살아오셨지만 여전히 생활환경이 열악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민분들이 공감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청년 극단 두 팀의 복현유사 낭독극이 이어졌습니다. 극단 라면의 박지은 대표님이 낭독한 “사내와 복현도깨비”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서성남 어르신이 연신 웃으시며 바라보시고, 풍부한 표정과 실감나는 연기에 극 도중에 어르신들이 자발적으로 박수를 쳐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다음 무대는 극단 만신의 김지영, 신용호님이 활기찬 에너지로 장식해주셨습니다.“배자못과 행복현동” 역시 주인공인 인물 ‘옥’과 악역 ‘불행’의 싸움을 활기찬 연기로 풀어내주셨습니다. 이옥기 어르신, 편찬한 윤석환 친구가 이렇게까지 잘 구현해주셔서 정말 재밌고 뿌듯하다 하셨습니다.두 극단이 구연하신 복현유사의 이야기들을 보니, 21세기에 전기수를 그리며 기획했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난 것 같아 저로서는 정말 좋았습니다.시 낭송, 극단들의 공연이 끝나고 참여해주신 주민들이 청년들과 함께 모여 교류하며 감상을 나누는 시간인 세대공감 ‘복식당’이 이뤄졌습니다. 복현1동 주민간 관계 맺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에 <함께 먹을 수 있는 자리>만큼 중요한 것은 없겠죠. 복현유사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청년과 마을주민이 이웃으로서의 관계를 형성하고, 세대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복식당이 앞으로도 더 큰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시끌벅쩍 이야기꽃이 피어났습니다. 센터의 행사, 워크숍 때마다 어르신들을 위해 아낌없이 정성을 쏟아주시는 환토리 연구소에서는 차와 다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주셨습니다. “나의 소원” 시를 낭송한 남점화 어르신은 연극을 보시고 해맑게 웃으시며 나도 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주민 전기수가 태어나는 것, 그것을 향유하는 주민들이 생겨나는 것이 어쩌면 이 복현유사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어르신들은 아낌없이 박수쳐주시고 눈물이 고이시고 힐링 하시는 것 같아 기획자, 진행자로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현장에서 주민분들과 희로애락하는 복현1동 현장지원센터 직원분들, 내마음은콩밭의 이영지 매니저와 서민정 대표님이 친절하게 그리고 마음껏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잘 서포트해주셨습니다. 디자이너 박슬기님이 5편의 복현유사를 읽고 떠오른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공간을 잘 꾸며주시고 킬킬콘텐츠연구소의 김윤환 대표님과 다른 분들이 무거운 장비를 대동해주셔서 멋진 음향과 조명으로 낭독극과 공연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셨습니다.뿌듯한 일이 이루어지게끔 해준 많은 분들에게, 뿌듯한 일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삶에 정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복현유사가 어르신들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되고, 사라지지 않을 기록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으면 합니다.